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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함평 여행 돌머리해수욕장 수벽사 파평윤씨 집성촌 모평마을 상해임시정부청사 독립운동 역사관 김철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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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함평여행
2.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3. 김철 독립운동가
4. 함평 상해임시정부청사 독립운동 역사관
5. 돌머리해수욕장
6. 모평마을
7. 수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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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함평은 살기 좋고 모든 것이 넉넉해 조화롭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름진 평야와 맑은 강이 흐르고 넓은 뻘밭이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산영수는 함평의 아름다운 풍광을 수식하는 또 하나의 단

어입니다. 

조선 세종 때 귀향한 이안이 함평천 인근을 중국 허난 성의 기산영수와 견줄만한 곳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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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기산영수의 어원을 알아볼까요?

중국 요임금이 기산에 은둔하던 선비 허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와이를 부탁하자, 이를 거절하고 산 아래 영수물에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그때 소를 끌고 나온 소의 주인이 귀를 씻은 연유를 묻고는 그 물에 소조차 먹일 수 없다며 위쪽 상류로 갔다는 데서 기산영수가 연유합니다. 

즉,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는 은자의 덕에 대한 최고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 연유인지 함평은 백성을 위한 선비들의 전례가 많습니다. 

자신이 살던 집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하도록 한 김철 선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철 독립운동가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 재무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이후 2006년 국가 보훈처에서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1886년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서 출생후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 여운형등과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습니다. 

1919년 손병희등과 3.1 운동을 협의하고 그 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의원이 되고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192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 후 1934년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장이 되었습니다. 

해방 전 1934년 중국 항저우에서 서거하셨습니다. 

 

함평 상해임시정부청사 독립운동 역사관

위치: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605-1

관람시간 09:00~17:00

입장료 무료

 

함평에 가면 상해 임시정부청사가 있습니다. 

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은 함평 출신으로 신광면 함정리에 출생하였습니다.

중국 상해로 망명해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3.1 독립운동의 거사를 모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천석 군의 재산을 처분하여 상해임시정부 청사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데 힘썼습니다.

김철 선생이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배경으로 고향 함평에 독립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재현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킨 태동기 역할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이봉창, 윤봉길 의거등을 계획하고 실현한 곳으로 유명하죠.

상해 임시정부청사 1층은 회의실과 주방, 2층은 집무실, 3층은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함평 독립운동 역사관은 중국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청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책상, 침대등 각종 소품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돌머리 해수욕장

함평읍 맨 서쪽 바닷가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육지 끝 바위로 되어 있어 붙어진 이름입니다. 

여기는 솔숲이 울창하고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은 무안반도 너머 저녁노을이 유명합니다. 

광주에서 출발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이곳은 가족단위로 많이들 찾고 계시는 거 같아요.

바다 한가운데 바다를 보며 산책할 수 있는 데크로드가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이 데크로드는 서해안 최고의 경관을 볼 수 있는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 갯벌탐방로입니다.

모래사장 한켠에는 편하게 쉬고 놀 수 있는 원두막들이 놓여 있습니다. 

갯벌탐방로를 지나치면 전망대도 볼수 있어요.

이곳은 전망대 포토스팟입니다.경치를 보기에 너무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포토스폿 옆에는 망원경도 놓여있습니다. 

모평마을

전라남도 함평군에 위치한 모평마을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생생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농촌마을입니다.

예쁜 돌담길로 시작되는 모평마을은 함평군의 뿌리가 되는 마을입니다. 

마을 전체가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27종의 역사문화 자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변의 해보천을 따라 늘어선 마을 숲은 500여 년 전에 조성된 천연보호림으로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나무가 40여 그루 모여있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마을에서는 80년의 역사를 지닌 모평헌, 소풍 가, 희소문등의 한옥민박집에서의 숙박체험이 가능합니다.

 

모평마을은 천 년 전 고려시대 함평 모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일군 곳입니다. 

그 후 1460년쯤 윤길이 90세의 나이로 귀양길에 돌아오다 이곳의 산수에 반해 정착하면서 파평 윤 씨의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주민의 90%가 파평 윤 씨로 마을 대부분 친인척입니다. 

마을 중간 솟을대문 사이로 귀령 재라는 편액이 걸린 한옥은 파평 윤 씨의 종가입니다. 

윤상용 선비가 둘째 아들을 위해지어 준 고택과 동헌 내 아터에 있는 윤선식 가옥이 유명합니다. 

 

또한 임천산 산책로 들목에 오동나무와 대숲에 둘러싸인 영양재가 있습니다. 

영양재는 기둥마다 걸려있는 문구가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자아냅니다.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수벽사

모평마을 뒷산에는 대밭과 야생차나무 밭이 있습니다. 

물레방아 옆 수벽 사는 동북 9성을 쌓은 고려의 윤관을 모신 사당입니다. 

수벽사 옆은 신천강 씨 열녀비가 또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신천강 씨는 정유재란 때 남편이 왜병에게 살해되는 것을 막으려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열녀비 옆 충노 도생과 충비 사월의 비석 또한 있습니다. 

이는 노비 부부가 강 씨 부부의 죽임으로 혼자가 된 어린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과거에 급제를 시켰다고 합니다. 

수벽 사는 해보천을 따라 팽나무, 느티나무, 왕버들등 수령 300년의 고목 서른여섯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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